코스피가 저평가됐다는 기사에는 늘 PER 숫자가 따라붙습니다. “PER 7배면 과거 평균보다 훨씬 싸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어떤 증권사 리포트는 실제 PER이 7.9배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지수 하나를 두고 숫자가 갈리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실 텐데, 여기에는 지수 전체의 이익을 더하는 방식에서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PER은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PER(주가수익비율)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누거나, 시장 전체로 보면 전체 시가총액을 전체 순이익으로 나눠서 구합니다. 이 숫자가 낮다는 건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게 매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PER이 높으면 이익보다 주가가 비쌉니다. 그래서 코스피 전체 PER을 과거 평균이나 다른 나라 지수와 비교해 “싸다, 비싸다"를 판단하는 데 씁니다.
문제는 이 계산의 분모, 즉 시장 전체 순이익을 어떻게 더하느냐에 있습니다.
같은 이익이 두 번 잡히는 구조
한 회사(모회사)가 다른 회사(자회사) 지분을 절반 넘게 쥐고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회계 기준상 모회사는 자회사의 재무제표를 연결해서 자기 순이익에 자회사 몫 이익을 반영합니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회계 처리입니다.
그런데 이 자회사가 따로 증시에 상장돼 있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자회사 자체의 시가총액과 순이익도 코스피 지수의 합계에 그대로 들어갑니다. 결국 자회사가 번 이익 한 덩어리가 모회사의 연결 순이익 안에서 한 번, 자회사 자체 실적으로 또 한 번, 총 두 번 지수 전체 순이익 합계에 반영됩니다. 이걸 더블카운팅(중복이익)이라고 부릅니다. 분모인 전체 순이익이 실제보다 부풀려지니 시가총액을 그 값으로 나눈 PER은 실제보다 낮게, 즉 더 싸 보이게 나옵니다.
올해 그 크기는 순이익의 11%가 넘는다
신한투자증권과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이 착시의 크기가 작지 않습니다. 올해 코스피 예상 순이익 796조원 가운데 약 89조원이 모회사와 자회사에 중복으로 반영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이 중복분을 걷어내면 PER은 7.0배에서 7.9배로 올라갑니다. 표면 지표보다 실질 배수가 13%가량 높은 셈입니다.
이 중복이익 규모는 최근 들어 빠르게 커졌습니다.
| 연도 | 중복이익 규모 |
|---|---|
| 2022년 | 14조원 |
| 2025년 | 27조원 |
| 2026년(예상) | 89조원 |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고 대형 상장 자회사들의 실적이 함께 늘면서 중복분도 같이 불어난 결과입니다.
유독 한국 지수에서 크게 나타나는 이유
이 문제가 모든 나라 지수에서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지주회사가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그 계열사까지 따로 상장시키는 관행이 얼마나 흔한지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기준 상장사 이익 중 더블카운팅 비중을 국가별로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합니다.
| 국가 | 더블카운팅 비중 |
|---|---|
| 한국 | 15.5% |
| 일본 | 11.1% |
| 영국 | 5.0% |
| 중국 | 3.1% |
| 프랑스 | 2.35% |
| 미국 | 1.1% |
한국의 비중은 미국의 14배 수준입니다. 모회사와 자회사를 함께 상장시키는 구조가 그만큼 흔하다는 뜻입니다. 코스피 전체 PER을 볼 때 국가별 차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다른 지수와 단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도 구조 자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개별 투자자만 느끼는 게 아니라 금융당국도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사안입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2026년 8월 3일부터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상장돼 있는 모회사·자회사 관계에 소급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상장사의 종속회사나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계열회사가 새로 상장하는 길이 원칙적으로 막힙니다. 당장 지수 전체의 더블카운팅 규모를 줄이지는 못해도 이 구조가 계속 커지는 흐름에는 제동을 건 조치입니다.
지수 PER 하나로 시장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원리는 단순합니다. 코스피 전체 PER이 낮다는 뉴스를 볼 때 그 숫자가 어떤 순이익 기준으로 계산됐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같은 이익이 두 번 잡혀 분모가 부풀려진 상태라면 지수는 실제보다 싸 보입니다. 개별 기업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주사 구조 안에 있는 회사인지, 자회사가 따로 상장돼 있는 회사인지에 따라 PER이 가리키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확인할 것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data.krx.co.kr)에서는 코스피 전체와 업종별 PER·PBR·배당수익률을 무료로 조회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 나온 지수 PER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이 페이지에서 발표 시점과 계산 기준을 함께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