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불황이면 물가가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둘이 한꺼번에 온다니 어딘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이 글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그리고 왜 해결이 어렵다고들 하는지 원리를 설명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쓰지 않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뜻, 이름에 답이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입니다. 성장은 멈추거나 뒷걸음질하고 실업은 늘어나는데, 물가는 오히려 오르는 상태입니다.
보통은 이렇게 짝이 맞습니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고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나쁘면 수요가 줄어 물가가 잠잠해집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실업과 물가가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고 가르쳤는데, 1970년대에 둘이 같이 오르면서 이 설명이 맞지 않게 됐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따로 이름을 얻은 이유입니다.
불황인데 물가는 왜 오르나요
핵심은 물가를 밀어 올리는 힘이 수요가 아니라 공급 쪽에서 온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써서 오르는 물가는 경기 과열의 신호입니다. 반대로 원료 값이 먼저 뛰어서 오르는 물가는 기업이 비용을 떠안은 결과라서 소비자는 오히려 지갑을 닫습니다.
순서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 원유처럼 거의 모든 산업에 들어가는 원자재 값이 갑자기 뜁니다.
- 기업의 생산 비용이 늘고, 기업은 그만큼 가격을 올립니다. 물가가 오릅니다.
- 물가가 오르면 같은 월급으로 살 수 있는 게 줄어서 소비가 위축됩니다.
- 팔리는 양이 줄고 이익도 줄어든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줄입니다. 경기가 나빠지고 실업이 늡니다.
이런 충격을 공급 충격이라고 부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역사 자료에 따르면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의 석유 금수 조치가 약 5개월 이어지며 원유 가격이 네 배가 됐고,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으킨 두 번째 에너지 위기로 원유 가격이 다시 세 배가 됐습니다. 이 두 번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방아쇠로 꼽힙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숫자가 이랬습니다
시점별 수치입니다. 1979년 8월 행은 위 연준 자료에 나오고, 1980년 행은 미국 노동통계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실업률 원계열에서 가져왔습니다.
| 시점 | 물가상승률(전년 대비) | 실업률 |
|---|---|---|
| 1979년 8월 (볼커 의장 취임) | 11% 넘음 | 6% 바로 아래 |
| 1980년 3월 (물가 정점) | 14.8% | 6.3% |
| 1980년 7월 | 13.1% | 7.8% |
출처: Federal Reserve History, The Great Inflation, 1980년 수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와 실업률 원계열
물가와 실업률이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이 시기 연준은 1979년 10월에 정책 방식을 바꿔, 기준금리 수준 대신 준비금 증가율을 목표로 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물가를 잡는 데 전보다 단호하게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인플레이션과 어떻게 다른가요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른다는 현상 하나를 말합니다. 경기가 좋아서 오를 수도, 나빠도 오를 수도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그중에서 경기가 나쁘고 실업이 늘면서 물가가 오르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물가 지표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소비자물가지수 계산법 글에, 일시적 충격을 걷어낸 근원물가와 헤드라인 물가의 차이는 별도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에너지 값 때문에 헤드라인 물가만 뛰는 상황을 구분해서 보는 눈이 바로 이 대목에서 쓰입니다.
그렇다고 물가가 오르는 달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물가 상승, 성장 둔화, 실업 증가가 함께 나타나고 어느 정도 이어질 때 쓰는 말입니다. 몇 개월 수치로 단정하는 건 분석가들도 조심합니다.
왜 해결이 어렵다고 하나요
정책이 서로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오를 때 쓰는 기본 도구는 금리 인상이고, 경기가 나쁠 때 쓰는 기본 도구는 금리 인하입니다. 두 문제가 동시에 오면 도구가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는 잡히지만 경기와 고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금리를 내리면 경기는 받치지만 물가 상승이 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한쪽이 나빠지는 구조입니다. 실제 결정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여러 지표를 보고 내립니다.
금리를 올리면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 소비와 투자가 더 줄 수 있다는 점은 금리와 주가의 관계 글에서 다뤘습니다. 반대로 경기를 걱정해 금리를 내려 둔 채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 실질금리가 낮아지거나 마이너스가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느 쪽이든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진퇴양난"이라는 표현이 자주 붙습니다.
주식과 내 지갑에는 어떤 경로로 닿나요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쓰지 않고, 닿는 경로만 보겠습니다.
- 기업은 원가가 오르는데 소비가 줄어 가격을 마음껏 올리기 어렵습니다. 이익이 줄어드는 경로입니다.
- 물가를 누르려 금리가 높게 유지되면 기업의 이자 부담이 늘고,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를 깎는 할인율이 올라갑니다.
- 가계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생활비가 늘어 저축과 투자에 쓸 돈이 줄어듭니다.
세 경로가 모두 같은 방향이라서 이 상황이 주식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설명이 나오는 겁니다. 다만 실제 주가는 이미 이런 우려를 얼마나 반영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경로를 안다고 결과를 맞힐 수는 없습니다.
오늘 확인할 것
뉴스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접하시면 세 가지만 확인해 보세요. 물가상승률이 높아졌는지, 성장률이 둔해졌는지, 실업률이 올랐는지입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직접 조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가가 오른 이유가 수요 때문인지, 원자재 같은 공급 때문인지를 가려 읽으면 같은 기사도 다르게 보입니다. 용어의 공식 정의는 한국은행 경제금융용어사전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검색해 대조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