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예방법을 검색하면 체크리스트가 길게 나옵니다. 그런데 항목을 외우기 전에 한 가지만 이해하면 나머지가 거의 따라옵니다. 사기든 아니든 보증금을 못 받는 일은 대부분 같은 계산에서 시작합니다. 집이 경매로 팔렸을 때 그 값에서 내 앞 순서의 빚을 빼고 나면 내 보증금만큼이 남는가, 하는 계산입니다.

전세가율은 집값 중 보증금이 차지하는 몫입니다

전세가율은 매매가격 대비 전세보증금의 비율입니다. 집값이 3억원이고 보증금이 2억원이면 전세가율은 약 67%입니다. 이 숫자가 높다는 건 집값에서 보증금이 차지하는 몫이 크고, 집값이 조금만 내려도 보증금을 덮을 여유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전세가율이 높으면 뭐가 위험한지는 전세 보증금을 지키는 세 가지 장치에서도 다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빠지기 쉽습니다. 전세가율은 내 보증금만 놓고 계산한 비율입니다. 집에 이미 설정된 대출이 있으면 그 몫이 따로 있습니다.

근저당은 내 앞에 서 있는 줄입니다

근저당은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릴 때 등기부등본에 올라가는 권리입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낙찰대금은 권리의 순서대로 나눠 갖습니다. 내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은 날보다 먼저 설정된 근저당은 내 앞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순서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확정일자와 전세권을 비교한 글에 적었습니다.

아래는 단순화한 가상의 수치입니다. 실제 경매 낙찰가는 시세와 다를 수 있습니다.

구분집 A집 B
집값3억원3억원
선순위 근저당없음1억2천만원
내 보증금2억원2억원
전세가율약 67%약 67%
집값에서 근저당과 보증금을 뺀 값1억원-2천만원

출처: 보증한도 계산식(서울시 주거포털)을 참고해 단순화한 가상의 수치

두 집의 전세가율은 같습니다. 그런데 집 B는 집값 그대로 3억원에 팔려도 근저당 1억2천만원을 먼저 갚고 나면 내게 돌아올 돈이 1억8천만원이라 보증금에서 2천만원이 모자랍니다. 전세가율만 보면 안전해 보이는 집이 근저당 한 줄 때문에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등기부등본의 을구에서 이 줄을 찾는 방법은 등기부등본 읽는 법에서 따로 설명했습니다. 근저당에 적힌 채권최고액은 실제 대출금보다 크게 잡히는 경우가 많아서, 금액을 볼 때는 그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집 열쇠와 계약 서류

전세사기 예방 보증보험은 같은 계산을 대신 해 줍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먼저 지급하는 상품입니다. 서울시 주거포털이 소개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내를 보면 보증한도는 “주택가격 × 담보인정비율(90%) − 선순위채권 등"으로 계산합니다. 앞에서 한 계산을 기관이 90%라는 보수적인 선으로 다시 해 본다는 말입니다.

같은 안내에서 확인되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항목내용
보증금 상한수도권 7억원 이하, 그 외 지역 5억원 이하
계약기간1년 이상
필수 절차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신청 기한신규 계약은 잔금지급일과 전입신고일 중 늦은 날부터 계약기간의 절반이 지나기 전

출처: 서울시 주거포털,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이 90% 기준은 2023년 5월 신규 보증 신청부터 적용됐고 갱신 보증은 2024년 1월부터 같은 기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집값과 보증금이 같아도 보증보험에 들 수 있어서 위험한 집의 계약이 늘었다는 것이 당시 보도의 설명이었습니다(비즈니스포스트 2023년 5월 1일자 기사). 상품의 세부 기준은 바뀔 수 있으니 가입 전에 HUG 등 보증기관 공식 안내를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가입이 안 되는 집이라면 이 계산에서 이미 여유가 부족하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보증보험을 들 수 있느냐가 곧 그 집의 건강검진 결과인 셈입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쓸 때 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되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돌려받는 조건을 특약에 넣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서 특약은 빈틈이 생기는 시점을 막습니다

전세사기에서 자주 나오는 수법은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하기 전, 대항력이 생기기 전에 집주인이 집을 팔거나 근저당을 새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앞 계산의 전제가 계약 뒤에 바뀌는 셈입니다. 대항력은 전입신고를 마친 다음 날 0시에 생기므로 잔금을 치른 날과 하루 정도 틈이 있습니다.

정부는 2022년 9월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에서 임차인의 대항력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임대인이 매매나 근저당권 설정 등을 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에 명시하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정책브리핑, 2022년 9월 1일자). 현재 서식에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는 계약 때 쓰는 표준계약서를 직접 펼쳐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미 근저당이 있는 집이라면 “말소하기로 한다"는 문구만으로는 약합니다. 잔금일에 대출을 갚고 등기부에서 말소하는 것을 잔금 지급 조건으로 적고, 잔금일에 등기부등본을 다시 떼어 실제로 지워졌는지 확인한 뒤 돈을 보내는 순서가 맞습니다.

안심전세 앱은 이 확인을 한곳에 모아 줍니다

HUG의 안심전세 앱은 등기부등본과 확정일자 정보 등을 모아 주택과 임대인의 위험도를 보여줍니다. 앱이 무엇을 보여주는지는 앞선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다만 앱의 결과는 조회 시점의 정보입니다. 계약 당일과 잔금일 사이에 권리관계가 바뀔 수 있어서 마지막 확인은 등기부등본으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오늘 확인할 것

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후보 집의 등기부등본부터 한 통 떼어 보세요. 갑구에서 소유자와 압류 여부를, 을구에서 근저당 금액을 확인하고, 집값에서 근저당과 내 보증금을 더한 값을 빼 봅니다. 이미 살고 있는 집이라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되어 있는지, 보증보험 신청 기한이 계약기간의 절반을 넘지 않았는지 오늘 날짜로 세어 보시면 됩니다. 계산이 끝나면 HUG 공식 안내에서 해당 집이 보증 대상인지 마지막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